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.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,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.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 엥글 (문단 편집) === [[우주왕복선]] 프로그램 === [[파일:external/upload.wikimedia.org/600px-Space_Shuttle_Approach_and_Landing_Tests_crews_-_cropped.jpg]] 왼쪽부터 풀러튼, 헤이즈, 엥글, 트룰리. 엥글은 이후 [[엔터프라이즈 우주왕복선|엔터프라이즈]] 활강 시험기의 테스트 파일럿이 되었다. 1조에서는 [[아폴로 13호]]의 멤버였던 [[프레드 헤이즈]]와 공군 [[MOL]]에서 편입된 C. 고든 풀러튼이 활동했고, 2조에서는 엥글과 공군 [[MOL]] 출신의 [[리처드 트룰리]]가 활동했다. 1977년 6월부터 10월까지 세 차례의 테스트를 수행하여 우주왕복선의 안정성을 검증했고, 이후 우주왕복선의 두번째 테스트 미션인 [[STS-2]] 미션의 사령관으로서 트룰리와 함께 비행에 나서게 된다. 이 당시 갖고 간 연료전지가 이상을 일으키며 미션 기간이 125시간에서 54시간으로 많이 짧아졌는데 중계위성도 없는 시절에 지상 관제소와 잠깐 연락 끊길 때 잔다고 뻥치고는[* 사실 관제팀에서도 잔다는 놈들이 전력을 겁나 많이 쳐먹고 있길래 얘네들이 일하고 있구나 알았다.] 근성으로 로봇 팔 테스트를 진행했다. [[파일:external/upload.wikimedia.org/500px-STS-51-I_crew.jpg]] 뒷줄 : 제임스 밴 홉튼(James D. A. van Hoften), 마이크 런지(John Michael "Mike" Lounge), 윌리엄 프레더릭 피셔(William Frederick Fischer, 이상 미션 스페셜리스트) 앞줄 : 엥글, 리처드 오스왈트 코비(Richard Oswalt Covey, 조종사)[* [[STS-51-L]] 당시 지상 캡콤이었다. 챌린저호 폭발 직전에 "Challenger, Go at throttle up."(챌린저, 출력 최대로.) 명령을 내린 바로 그 인물. 챌린저 참사를 다룬 수많은 영상에서 리처드 코비가 위의 명령을 내린 직후 챌린저가 화염에 휩싸이고, 경악하는 표정을 짓는 코비의 모습이 반드시 나온다. 챌린저 바로 다음의 비행 재개 미션인 STS-26에서 활동했고, 은퇴한 뒤에는 [[토머스 스태퍼드]]와 함께 [[STS-107]] 사후대책 연구위원회를 꾸려 활동했다.] 이후 1985년 통신 위성 3개를 궤도에 전개하는 미션인 STS-51-I(디스커버리) 미션에서 사령관으로 활동하였고 계속해서 우주왕복선을 조종할 예정이었지만, 1986년 1월의 [[STS-51-L]] 챌린저 폭발참사로 NASA의 모든 프로그램이 취소되며 사고 방지 연구에 전념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